813의 비밀
[토우광해] 溪谷 본문
토우는 순간의 욕심으로 광해를 물에 뛰어들게 한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협박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거니와 옷을 다 입은 채로 뛰어들 거란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물보다 호랑이를 한참 무서워하는 어린 왕세자의 의복이 다 젖고 말았다. 어린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존귀하신 몸이 고뿔에라도 들까 걱정돼서. 보다 정확히는, 그 존귀하신 몸을 고뿔에 걸리게 한 죄로 참수라도 당할까 걱정돼서. 결국 간만에 좀 오랫동안 물에서 씻으려고 했던 토우는 몇 분이 되지 않아 물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한번 광해가 물에 빠질 뻔했는데, 토우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했지만 그 사과는 방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왕세자의 마음을 풀기는커녕 그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덧붙인 말이 문제였다.
미처 저하의 키를 생각하지 못하여서…….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냐?
자신에 비해서도 한없이 낮은 목소리다. 그렇게 진중한 목소리로 얘기해놓고도 또 물에 빠질세라 저를 꼭 잡은 손끝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광해군. 떠넘기듯 왕세자 자리를 얻게 된. 자신의 뺨을 치던 모습과 안 그래도 가마를 타기 싫었다며 제 행동을 보호해준 사람. 물론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마를 지고 산을 올라가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대립군 대부분이 이 어린 왕세자를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토우는 광해가 그저 철부지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라고 왕세자가 되고 싶어서, 왕세자가 되고 싶어서 그 자리에 올랐는가. 그가 대립군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듯. 자신의 뺨을 친 것도 자신이 그가 다른 백성들을 돌보기 위하여 준비한 병법서를 불타게 내버려뒀기 때문이지 않았는가. 그건 백성들의 목숨이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토우가 광해를 살리기를 잘했다, 처음으로 생각했던 순간이기도 했고. 두 번째는 방금, 호랑이가 있단 소리에 토끼마냥 재빠르게 자신에게로 뛰어들었을 때.
어느새 제 팔에 느껴지던 무게감이 사라지고 없다. 토우는 입던 옷을 풀풀 벗기 시작하는 광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둔다. 옷을 벗는 것은 당연했다. 잔뜩 젖은 옷을 입고 산길을 걷다가는 감기와 복통에 시달릴 것이 빤했다. 흉터투성이의 자신과는 다른, 매끈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가 아주 얇은 비단옷 밑으로 드러난다.
무엇을 그리 보고 있는 게냐.
광해가 생략한 말은 ‘어서 나를 도와 물을 짜내지 않고.’라는 뜻이었으나, 오로지 그 매끈한 살결의 감촉에 대하여 생각하던 토우는 “죄송합니다.”를 덧붙이고 시선을 거둔다. 토우가 광해가 의도한 뜻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광해도 토우가 이해한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라, 광해의 도톰한 입술에는 옅은 비웃음이 새겨져 있다.
그래, 왕세자의 몸은 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그렇게 바닥에 질질 끌었나?
그것이…….
―그것이?
죄송합니다.
이십여 년을 대립질로 살아오면서도 입에 죄송하다는 말을 담아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압도적인 신분의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광해가 특별한 것인가. 토우는 전자라고 단언했으나 그의 마음 한 편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광해의 옷이 어느 정도 마르고, 이쯤하면 이 어린 왕세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때 즈음에서야 그들은 그들 일행이 있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 난 상처와, 광해가 감기에 걸릴 가능성 같은 것에 대해 토론하며. 자신이 첩자로 보낸 대립군이, 광해에게 어떤 소식을 전달해줄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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